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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살리는 것은 영이니-

말씀: 요 6:63
요절: 요 6:63

요한복음 7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6장의 핵심 말씀 한 구절을 한 번 더 다루고자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명심하고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성경의 요절 가운데 하나라고 굳게 믿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무엇인지 이보다 더 정확하게 분명하게 선포한 구절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다! 영외에는 어떤 것도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철학자들이나 종교인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한 방법을 찾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모두 주님께서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한다고 단언한 ‘육’일 뿐입니다. 육에서 열심히 생명을 찾고 있는 꼴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란 말씀은 우리의 관심이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 세상적인 것, 육신적인 것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본질에 관심을 기울이게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동, 식물에서 추출한 음식이나 약품이 아닙니다. 아무리 1000년 묵은 산삼이라 해도 사람을 살리지 못하며, 지하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천연 암반수라 해도 사람을 살리는 데는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밤을 새워 연구합니다. 수명을 연장하고, 병을 치료하고, 고통을 덜어줄 어떤 물질을 찾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찾기만 한다면 돈벌이가 됩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비싸더라도 그것을 구하려 할 것입니다. 에덴의 동산에서는 생명 나무 실과를 먹기만 하면 삽니다. 천년 왕국에서도 우리는 생명 나무 실과를 봅니다. 또 그 잎사귀로 병을 치유하고,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봅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우리는 그것을 구할 수도 없거니와 주님이 사람을 살게 하는 방법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영화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만찬에 포도즙을 마셨던 잔을 성배라고 찾아 나선 고고학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인디애나 존스 씨리즈). 상상력의 소산이긴 하지만 성배에는 신비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그려 놓았는데 설사 성배가 발견되고, 주님이 입으셨던 옷이 발견되고, 주님이 못 박혔던 못이 발견된다 해도 그런 것이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눈에 보이는 어떤 물질적인 것이 사람을 살리지 않습니다. 물질로 말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두 죽었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물며 땅에서 난 어떤 것이 생명을 살릴 수는 전혀 없습니다.

주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성배, 성수, 성의 등 캐톨릭교도들이 즐겨 성(聖)자를 붙이는 어떤 것도 생명을 살리는데는 전혀 유익하지 못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어떤 종교도 사람을 살리는데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 상을 몇 백 개를 세워도 그것은 유익하지 못합니다. 성화를 몇 천장을 그리고, 목걸이를 만들어서 걸고 다니고, 몸에 문신을 새겨서 다녀도 그것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합니다. 육(肉)으로 영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육은 영의 대체물이나 보조물이 아닙니다. 육은 육이요, 영은 영입니다. 육신은 생명의 현상이나 결과일 뿐입니다. 영이 없는 몸은 죽은 것입니다. [이는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위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기 때문이라.](약2:26). 생명의 본질은 육이 아니라 영입니다.

주님은 오병이어를 맛보고 배부른 경험을 한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육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한다고 선언하심으로써 그들이 추구하는 종교적 이상과 환상을 모조리 무너뜨리셨습니다. 메시야를 통해 좀 더 안정적인 빵과 물의 공급, 좀 더 수준높은 경제 생활, 문화 생활, 부강한 국가 건설, 인권이 존중되고 이상적인 이스라엘 등이 되는 것을 희망했지만 그런 것들이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생각하고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이 전혀 유익을 줄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종교적 경험과 체험은 사람을 돌변하게 만들 수 있지만 실제로 그 경험이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기적을 보고 체험했던 사람들의 인생이 놀랍게 변화되었다는 간증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런 체험이 사람을 거듭나게 하거나 살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세를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세대보다 기적을 많이 보고 체험했던 사람들입니다. 엘리사의 몸종 게하시는 어떤 사람보다 놀라운 영적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체험이 그들의 생명에 어떤 도움이 되었습니까? 아무런 유익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많은 표적과 기적의 현장을 직접 경험했습니까? 하지만 그런 경험이 그들의 믿음을 강화해 주고, 영생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모두 주님을 배반하고 떠나 버렸습니다. 이는 오늘날 오순절 교회를 비롯한 많은 은사주의 교회들이 성령 운동을 통해 집회에서 이적과 기적을 일으키려는 노력을 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규모를 늘리는데 도움을 줄 뿐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이는 우리의 영적 가치관, 인생관을 잡아 주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육이 아니라 영입니다.

  • 사람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나를 살리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입니다.

  • 사람을 살리는 것은 경제가 아닙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교육이 아닙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물질주의자들은 물질 즉 돈이 사람을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한 많은 남자들, 여자들이 돈만 있으면 기가 살고, 체면이 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평생 일하지 않고 먹고 살만큼 부자였던 한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탐욕을 조심하라. 이는 사람의 생명이 그의 풍부한 소유에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눅12:15). 계몽주의자들은 교육의 빛이 사람을 살린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입니다. 이들은 교육이 생명의 요체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고, 경험과 이성에 따른 판단을 할 수 있으면 산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질은 교육 수준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참으로 지위가 낮은 자들은 헛되며 지위가 높은 자들은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그들을 다 더해도 허무보다 가볍도다.](시62:9). 지위는 오늘날 용어로는 학위입니다. 학위가 높은 자, 학위가 낮은 자들은 모두 저울에 달아도 허무보다 가볍다고 하십니다. 20-30년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불쾌한 일이겠지만 그들이 받은 학위가 생명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오직 실천입니다. 행동하는 실천 기준을 정해주고 그대로 실천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에 따른 벌을 주는 것이 이 세상을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들마다 세상을 살리는 법을 생각하고, 자신이 사는 법을 생각하며 우리 회사, 우리 민족이 어떻게 하면 살아날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육입니다. 영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합니다.

  • 어떤 이는 정치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 어떤 이는 경제 성장, 어떤 이는 공평한 분배, 어떤 이는 의식 개혁이 최우선 과제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살리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닙니다. 육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합니다. 살릴 줄 믿었던 돈이 사람을 죽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더 풍족해지고 더 좋은 집과 차를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만족도 행복도 없습니다. 살릴 줄 알고 열심히 공부했던 교육이 사람을 죽입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허무와 상실감을 느낍니다. 살릴 줄 알고 열심히 믿었던 종교가 사람을 죽입니다. 아무 것도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추구해야 할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어야 하며, 우리의 관심 대상 역시 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 육과 영은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육은 육신에서 나고, 영은 영에서 납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요3:6). 육이 변하여 영이 될 수 없고, 육을 개선하고 개혁하여 영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별개의 성질, 별개의 종류입니다. 육은 아무리 갈고 닦고 수양을 거듭해도 육신일 뿐 영이 아닙니다. 종교는 육신을 좀 더 쓸모있게 개조하는 작업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와 종교심은 인간의 육신의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가치를 인정해 주는데서 출발합니다. 우리의 육신 안에는 ‘불심(佛心)이 있다. 신성의 불꽃이 있다. 도(道)가 있다. 신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등의 온갖 좋은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발견하고 닦아 나가면 곧 득도요, 각성이요,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좋아합니다. 이런 종교는 자기만족(自己滿足)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라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십니다.

  • 육은 십자가에 못 박아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육신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모두 썩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은 육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육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체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육은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을 뿐 아니라 경험적으로 이미 그런 것들을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사람을 신뢰하며 육체를 자기 무기로 삼고 마음이 [주]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렘17:5). 전혀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육체를 신뢰한 사람들은 허무하게 망하거나 죽습니다.

  • 육신을 신뢰하는 자들은 주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롬8:5).

  • 육신을 따라 살면 죽습니다.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롬8:13).

  • 영은 살리는 것이지만 육은 죽이는 것입니다.

  • 육신과 성령은 대적 관계입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5:16-17).

  • 육신을 위해 심으면 썩는 것을 거둡니다. [자기 육신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갈6:8).
성경이 계속해서 육신과 성령의 이런 분명하고도 날카로운 대조점을 제시해 주는 것은 사람들이 육신을 신뢰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을 육체를 신뢰하지 않을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되는 것은 예수님만 믿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상은 믿지 않아야 하고, 세상은 버려야 하듯이 자기 육체 역시 신뢰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뻐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자이기 때문이라.](빌3:3). 영은 살리는 것이며,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빌3:3), 영으로 계시하시며(고전2:10), 영으로 섬기며(롬1:9), 영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며(고전14:15), 하나님의 영으로 쓴 편지가 바로 성도들이며(고후3:3),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살아야 합니다(롬8:14). 주님에게 육신은 전혀 무익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육신을 십자가로 처리하고 영을 따라야 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63). 그렇다면 우리를 살리는 영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육신이 아니라 오직 영입니다. 물질이 아니라 영입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입니다. 물질은 생명의 결과요, 현상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영(靈)이라고 하면 막연해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도대체 영(靈)이 무엇인가?

영(靈)은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영(靈)은 바람과 같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주]의 영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참으로 풀이로다.](사40:7).

영을 바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너는/ 바람에게 대언하라. 바람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오 숨아, /사방의/ 네 바람으로부터 와서 이 죽임 당한 자들 위에 숨을 불어 그들로 하여금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겔37:9). 성령이 바람과 같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실 때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같이 임하셨습니다.

창세기로 가 보겠습니다.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주님은 그 코에 생명의 숨을 코에 불어 넣으셨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魂)이 되니라.](창2:7). 생명의 숨이란 곧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때에 사람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습니다. 창조 때부터 살리는 것은 영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욥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나를 만드시고 전능자의 호흡이 내게 생명을 주었느니라.](욥33:4). 전능자의 호흡이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코에 있습니다. [내 호흡이 내 속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내 코에 있을 동안에는](욥27:3).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부터 육으로 살린 것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이 땅에서 난 어떤 것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가르침이요, 종교의 가르침이요, 철학의 이상이지만 지금까지 모두 죽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숨을 너희 속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겔37:5). 하나님의 숨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요,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흙으로 지은 사람을 지으시고 숨을 불어 넣었을 때 살아 있는 혼이 되었고, 마른 뼈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살아난 사람 안에 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안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영감(靈感)이 사람들에게 명철(明哲)을 주시나니](욥32:8). 영으로부터 나지 않는 사람은 영이 죽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호흡을 어디에 불어 넣어 주셨습니까?

성경입니다. 문자에 주님의 호흡을 불어 넣으면 성경이 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딤후3:16a).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영은 모두 같은 말입니다. 영에서 난 것이 영이요, 영은 살리는 것입니다. 죽은 것들을 살리는 것이 영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읽고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이 됩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살게 됩니다. 성경은 사람을 살립니다. 주님이 이른 말씀이 바로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라.](요6:63b). 하나님의 말씀은 육이 아닙니다. 물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숨이 담겨 있으며, 호흡 그 자체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받아 들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시는 것과 동일합니다. 살리는 일에 하나님이 없고 인간의 노력이나 육체의 수고와 요령이 난무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 이 시대입니다. 모든 육체의 활동은 사람을 살리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믿는 성도입니다. 영이요 생명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그는 살아나며, 새 생명의 소유자가 됩니다. 말씀은 생명을 가져다 주는 씨앗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약1:18).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1:23). 진리의 말씀,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말씀으로 태어난 것이 새 생명이요, 중생(重生)이요, 거듭남입니다. 세상의 무엇이 사람을 살리며, 거듭나게 합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대답하되, {주}여,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이 주께 있사온대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8). 생명의 말씀이란 생명을 주는 말씀이란 뜻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는가 묻습니다. [보라,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이까? 하매](마19:16). 일을 하는 행위와 영원한 생명은 상관 관계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둘이 어떤 함수 관계가 있는 줄로 압니다. [그들을 데리고 나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행16:30). 빌립보 간수 역시 동일한 질문을 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습니다.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말씀을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잉태하신 분이시며, 태어나면서부터 성령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고전15:45).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성령도 영이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도 영이십니다. 주님은 잠시 육신의 몸을 입으셨지만 살려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마귀도 영이고 천사도 영이지만 이들은 살려 주는 영이 되지 못합니다. 살려 주는 영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병자를 일으키시고, 죽은 사람을 일으키셨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살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살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거듭난 사람만 살리십니다. 예수님 외에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b). 주님은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죽음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한 알의 밀알의 죽음이었습니다(요12:24). 십자가의 죽음은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는 죽음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하나 뿐인 생명을 양들을 위하여 내어 놓으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주거니와] (요10:11).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는 주님의 말씀은 자신이 살리는 영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살려 주는 영이시오,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나아오기만 하면 더욱 풍성한 생명을 얻습니다. 믿기만 하면 죽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영은 ‘말씀, 성령,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은 생명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의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길은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새 /상속/ 언약의 유능한 사역자로 삼으시되 율법 조문의 사역자가 아닌 영의 사역자로 삼으셨나니 이는 율법 조문은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기 때문이라.](고후3:6). 오늘날 교회들이 이 셋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부흥을 꾀하는 것은 모두 헛짓입니다. 어떤 교회 부흥 세미나에 가보면 교회 부흥을 해야 할 일이 파이프 오르간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파이프 오르간으로 은혜를 기치고, 그것으로 은혜를 받는 교인들이라면 이는 심각합니다. 교회에 요란한 음악이 있어야 부흥이 되는 줄 아는 분들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을 끌어 모으려면 CCM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교회의 분위기를 바꾸고 하얀 까운을 입고 조명을 받으며 등장하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살리는 것은 음악도 아니요, 설교자도 아니요,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란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영이요 생명인 말씀만이 사람을 살리며, 죽은 사람을 일으킵니다. 성령만이 거듭나게 할 수 있습니다. 살려 주는 영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호흡이요, 바람입니다. 성령은 성경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 안에 거하십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며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슥4:6). 주님은 모든 일을 영으로 하시며, 힘으로도 능력으로 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힘을 기르자고 합니다. 학생들은 학력을, 권세자는 권력을 국가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개개인은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자고 외칩니다. 체력은 곧 국력이라며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하고 건강을 신경 씁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말은 경쟁력입니다. 힘[力]이란 말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무엇을 잘하기 위해서는 지구력, 순발력, 창의력, 상상력 등 자생력을 기르라고 합니다. 그러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어디서나 통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생명은 힘과 능력으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주의 영으로 됩니다.

주의 영은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오 너 야곱의 집이라 이름하는 자야, [주]의 영이 제약을 받으시냐? 이 일들이 야곱이 행한 바냐? 내 말들이 곧바르게 걷는 자에게 선을 베풀지 아니하냐?](미2:7). 주님의 영은 시, 공간의 제약이 없으십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의 영이 임할 때 사람은 변하여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또 네게 [주]의 영께서 임하시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대언을 하고 다른 사람으로 변하리라.] (삼상10:6). 여러분에게 주의 영이 임하면 여러분은 딴 사람이 되고 맙니다. 새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거룩의 영이십니다. 진리의 영, 생명의 영, 건전한 생각의 영, 믿음의 영, 온유의 영, 약속의 영, 지혜와 계시의 영(엡1:17), 생각의 영이십니다.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明哲)의 영이요, 모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사11:2). 성령을 통해 우리는 거듭나게 되며, 죽을 몸도 살아나게 됩니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 생명을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 위에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20:22). 주님은 숨을 제자들 위에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자신의 영을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십니다(엡5:18). 아무 유익이 없는 육으로 일하려 하지 말고 영을 통해 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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