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Q13. 이번 질문은 다소 포괄적인 것입니다. 박사님께서는 뉴에이지 역본들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A. 계시록 12:9에 보면 "사탄, 그가 온 세상을 속이더라"(Satan, which deceiveth the whole world)고 말씀합니다. 속이는 프로그램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요. 계시록 13:3-4을 보면 "온 세상이... 용에게 경배하더라"라고 합니다. 사탄이 어떻게 온 세상의 다양한 종교들을 속여서 하나로 묶어 자기를 경배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속인다(deceiveth)는 말의 의미는 사탄이 자기의 진정한 정체를 숨긴다는 것입니다.  <뉴에이지를 위한 세계 종교를 향하여,Toward a World Religion for a New Age>란 책을 보면 사탄의 계획이 잘 나와 있습니다. 그 책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적절한, 공통의 어휘를 개발하여, 모든 단체들이 세계 종교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바로 공통의 어휘(common vocabulary)입니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뉴 에이지 문학에서는 부처, 크리쉬나, 루시퍼, 그리고 각 민족이 사용하는 그들의 신의 이름들을 그리스도(the Christ), 주(the Lord), 유일자(the One), 영(the Spirit)이란 어휘로 대체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모든 새 성경 역본들에서는 알게 모르게 이런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점차 세계 단일 종교에 일치하는 어휘들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역본들을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 여호와, 성령(Holy Ghost)란 어휘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the Christ, the Lord, the One(대문자 O), 그리고 the Spirit이란 단어가 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역본들의  구약 성경을 조사해 보면, 예를 들어 출애굽기 6:3같은 경우에, 여호와(Jehovah)란 이름이 완전히 삭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뉴 에이지 운동가들은 여호와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5:42을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 반면, 새 역본들에서는 '그리스도'(the Christ)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6:22을 비교해 보아도 킹제임스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되어 있는데 반해 새 역본들에서는 단지 '주'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하나님" 또는 "독생자"(only begotten Son)이란 말을 중성 대명사인 the One으로 대체했습니다.

여러분이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 또는 <티베트의 사자,The Tibetan Book of the Dead>, 루시퍼 숭배자들의 <비밀 교리,The Secret Doctrine>과 같은 뉴 에이지 책들을 읽어 보시면, "the One"은 바로 이교도들과 뉴 에이지의 신(神)임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새 역본들에서 이런 말씀의 변개가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슬픔과 충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그들이 말하고 있는 "적절한 공통의 어휘"란 사람들의 마음을 궁극적인 단일 세계 성경과 단일 세계 종교를 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 드립니다.

이사야 14:12과 같은 경우, 심지어 루시퍼를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게 취급하여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14장에서 루시퍼란 이름 대신에 "새벽 별"(개역 성경에는 계명성이라고 되어 있음-역주)이라고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새벽 별(morning star)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란 사실을 압니다. 뉴 에이지 운동가들은 루시퍼가 그리스도와 동일한 힘을 지닌 존재라고 믿는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스팽글러). 새 역본들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란 말을 인칭 대명사 him(그분)이라고 바꾸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13을 보십시오. 킹제임스 성경에는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through Christ)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몇몇 새 역본들에서는 이 구절을 "나에게 힘주시는 그를(him)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그란 빈칸에 괄호 넣기 식으로 아무 신이나 넣을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만약 불교도가 이 구절만 가지고 말한다면, 그란 단어에 부처를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아무나 '그'란 대명사에 집어넣어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3:16 또한 매우 심각한 오류를 일으키는 변개가 가해졌습니다. 디모데전서 3:16은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라고 킹제임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아마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구절일 것입니다. 그러나 새 역본들을 한번 보십시오. '그가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또는 '육체로 나타나신 그분'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God)이 빠지고 대명사 "그"(he)가 들어 간 것입니다. 계시록 21:4에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더라"란 말씀에서도 새 역본들은 "그가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더라"고 말합니다.

새 역본들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찾아내기란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잡고 사라져 가는 예수를 찾는 것과 똑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4:7에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한"이란 말을 빼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뉴에이지 철학과 세상의 종교들은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란 말이 있으면 가능성이 너무 배타적이 되기에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3:14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무릎을 꿇나니"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새 역본들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란 말이 당연히 빠져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노라"는 구절은 세상의 모든 종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9에 킹제임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셨느니라"(God, who created all things by Jesus Christ). 힌두교도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느니라"(by Jesus Christ를 빼고 믿음-역주) 새 역본들도 그들과 동일하게 믿습니다. NIV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예를 계속해서 들 수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주님은 보좌에서 쫓겨나 끌어 내려지고 있습니다. 새 역본들은 삼위 일체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성경 구절을 4개나 빼 버리고 그 의미를 희석시켰습니다. 요한일서 5:7에 NIV는 8절을 끌어다가 7절을 만들어서 삭제하지 않은 것처럼 꾸몄습니다. NASV는 6절의 후반부를 끌어다가 7절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성경 다 본래의 7절은 모두  삭제해 버리고 없습니다. 그들은 왜 7절에 있는 삼위일체를 빼버렸을까요? 요한일서 5:20의 본문을 읽을 때, 여러분은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니라"(this is the true God)라는 말씀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뉴 에이지와 이교도들은 참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구절들은 제거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새 역본들을 보면 하나님은 사닥다리를 타고 이 땅으로 내려오고 계신 반면, 인간은 그 사닥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신격(Godhead-대문자 G로 시작)이란 단어는 NIV와 다른 새 역본들에서는 "신의 성품"(divine nature-소문자 d와 소문자 n으로 시작)이란 단어로 대체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뉴 에이지 문학을 보면 인간이 지닌 신의 성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새 역본들은 인간의 자존감을 매우 높여 줍니다. 예레미야 13:15은 말하기를 "교만하지 말라"(be not proud)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NIV의 고린도후서 1:14에는 킹제임스 성경의 "너희의 기쁨"(your rejoicing)이란 말을 "교만하라"(be proud)고 말합니다. 왜 교회들이 이런 새 역본들을 쌍수를 들고 환영합니까? 이사야서 30:10이 대답해 줍니다. "우리에게 올바른 일들을 예언하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것들을 말하고 거짓된 것을 예언하라" 예레미야 5:31은 "선지자들은 거짓되이 예언하고 ... 나의 백성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10:21에 킹제임스 성경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반면 새 역본들에서는 단지 "나를 따르라"고만 말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의 백성"(이교도가 아닌)들은 "저를 따라 오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에게 십자가를 기억나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나팔을 부는 목사들을 좋아합니다.

새 역본들 가운데 어떤 성경에서는 "온전하라"(be perfect)명하신 디모데후서 3:17을 단순히 "적절하라"(be adequate)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훨씬 쉽습니다. 저 자신도 이 구절이 오히려 마음에 듭니다. 그 구절은 주님 앞에서 온전(완전)해지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편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베드로전서 1:22은 "순수한 마음"(pure heart)이라고 하는 반면 새 역본들에서는 그냥 "마음"(heart)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1:21에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holy men of God)이란 말씀을 새 역본들에서는 "하나님의 사람들"(men of God)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킹제임스 성경은 "순수한 마음을 지닌 온전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있는 반면, 새 역본들은 "적절한 마음을 지닌 하나님의 사람"이 텔레비젼 리모콘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느니라"(마12:33)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세계 단일 종교의 개념은 새 역본들의 에베소서 4:6에서도 드러납니다. 새 역본들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in all)계신다고 합니다. NASB는 계시록 22:21에서 다시 한번 "모든 것과 함께"(with all)있다고 말합니다. 요한일서 4:14은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느니라"(the Father sent the Son to be the Saviour of the world). '구주', '그 아들', '하나님', '복음'이라고 정관사(the)로 써서 말하는 대신 새 역본들은 모두 부정관사(a)를 붙여 a Saviour(한 구주), a Son(한 아들), a God(한 하나님), a gospel(한 복음)-여기서 '한'(a)이란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란 의미임 :역주)이라고 말합니다. 새 역본들은 기독교는 하나님께로 가는 많은 길들 가운데 한 갈래에 불과한 종교라는 뉴 에이지의 개념에 묵시적으로 동조하는 것같습니다.

새 역본들에 나타난 뉴 에이지의 성향은 "지옥"(hell)이란 말을 "저승"(Hades,우리 말로 저승, 황천으로 이해되는 그리스어임 -역주)이란 말로 바꾼데서 잘 드러난다. 뉴 에이지 운동가들은 하데스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데스는 정화의 중간적 단계란 의미로 정의되어야 한다" 그들은 하데스를 아주 좋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새 역본들에서는 하데스란 헬라어를 음차하였을 뿐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새 역본들은 다시 번역을 필요로 하는 역본들입니다. 롤라 데이비스(Lola Davis)같은 뉴 에이지 운동가는 지금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제 저 땅아래 실체적인 지옥이 없다는 것을 안다. 새 성경들에서는 지옥(hell)이 삭제되어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5)

계시록에서는 사람들이 용을 경배할 때에 대해서 말해줍니다(계9:20). 왜 모든 사람들이 용에게 경배할까요? 새 역본들에선 '마귀들'(devils)이란 단어가 삭제되고 '귀신들'(demons)이란 단어가 들어 갔습니다. 웹스터 사전을 펼쳐보면 마귀는 '수호신'이란 의미입니다. 반면 '마귀들'(devils)은 악한 영이라고 정의합니다. 웹스터 사전의 정의는 신학 용어 정의 사전의 '귀신이란  신의 영과 같은 인격을 지닌 존재'란 의미와 같은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마귀들을 섬기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