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Q14. 뉴 에이지 운동가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신다" 또는 "그리스도는 여기에 계신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들의 신원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다음 질문은 싸우스 라디오 교회 방송을 늘 청취하시는 한 목사님이 물으신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박사님이 킹제임스 성경을 수호하는 사역을 반대하지 않지만, 박사님께서 새 역본들을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하고 상처 줄 수 있다고 걱정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습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은 신뢰할 만한 역본입니까?" "뉴 킹제임스 성경은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왜 박사님은 그 성경은 가짜라고 말하시는지요?"

A. 저는 뉴 킹제임스 위원회에서 일한 사람들이 매우 선한 의도를 가진 경건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뉴 킹제임스 위원회에 계신 두 분으로부터 매우 긍정적인 서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은 저의 책을 한 상자씩 사 가지고 자신이 가는 교회들에 나누어 주고 계십니다.  또 한 분은 제게 추천서를 써 주셨습니다. 이런 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뉴 킹제임스가 어떻게 판명될지, 얼마나 실망스러운 성경인지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현명하고 경건한 분들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속임수는 늘 참된 것의 모방(모조)이나 흉내내기의 모습을 취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1:6-7은 말하기를 "다른 복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러나....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것이라"(킹제임스 직역. 우리 성경에는 '아니라'를 '없나니'로 되어있음-역주).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조금씩 바꿉니다. 이사야 14:14에 루시퍼는 말하기를 "나는 가장(지극히:한글 성경) 높으신 분과 같이 되리라"(I will be like the most High)고 합니다. 루시퍼는 챨스 멘슨(Charles Manson)과 같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장 높으신 분"과 같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는 가능한 한 하나님과 똑 같이 닮기를 원합니다.

디모데후서 3:8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이제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마술사들은 모세를 똑 같이 흉내내었습니다. 사탄은 최고의 위조자(counterfeiter)입니다. 그는 최대한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흉내내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겠습니까? 사탄도 빛의 천사로 나타납니다. 야곱은 자신이 형, 에서인 것처럼 가장하였을 때, 그의 말(목소리)이 그를 배반하였습니다. 저는 뉴 킹제임스 성경에 있는 말(words)이 그 성경이 위조품인 것을 밝혀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은 매 페이지마다 약 100여 개의 단어가 바뀌었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바뀐 어휘 수는 총 6만여 개에 달합니다. 1611년의 킹제임스 원본의 어휘와  1700년대에 있었던 철자법 개정(철자와 구두점)에 따라 바뀌어진 어휘가 총 400여 개인 것과 비교해 보십시오.

저는 예레미야 6:16의 성경 구절이 생각납니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고 옛길, 그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 그곳으로 가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하여 쉼을 얻으리라". 저는 오늘날 교회들이 쉼이 없는 것을 보면서, 옛길을 따라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 어휘가 변개된 예들을 몇 가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삭제된 곳부터 보겠습니다.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마4:3,6)이라고 말했습니다. 마귀가 질문한 것은 "그 아들"(The Son)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던 무리들도 "만약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마27:40)고 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분의 아들되심은 기독교의 필수 교리입니다. 사실 요한일서 2:22-23에도 말하기를,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자 외에 누가 거짓말쟁이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곧 적그리스도니라. 누구든지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없으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3:13과 26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킹제임스 성경)께서 뉴 킹제임스 성경으로 가면 종(servant)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예는 사도행전 4:27과 30에도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식(thy holy child Jesus)이라고 말하고 있는 곳을 뉴 킹제임스는 종(servant)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4:51에서 새 역본들과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 똑같은 헬라어 단어를 "귀족의 아들"(nobleman's son)이라고 번역한 것을 볼 때,  그들은 그 헬라어 단어가 "아들"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되심'을 제거해 버린 것입니다. 마태복음 20:20에서도 "경배하며"(worship)란 말을 "무릎 꿇고"(kneel)로 변개함으로써 뉴 킹제임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되심을 희석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6:64은  "권능의 오른 편"이라고 된 부분에서 뉴 킹제임스 성경은 "Power"(권능)을 대문자 P로 처리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권능(Power)의 우편에"6) 있다고 말함으로써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어떤 다른 것이란 암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구절을 읽으면서 마태복음 28:8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power)을 내게 주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로 그 권능의 소유자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 1:6에 뉴 킹제임스 성경에 있는 또 다른 변개를 보십시오.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 곧 그의 아버지"(God and his Father)라고 하는 반면 뉴 킹제임스는 "그의 하나님과 아버지"(His Father and God)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22:8은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 가장 열악한 번역 중의 한 곳입니다. 그 구절은 예언적 의미가 들어 있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신을 어린 양으로 준비하시리라"(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뉴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친히 양을 준비하시리라"(God will provide for Himself the lamb)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구절이 예언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압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양은 어린 양(lamb)이 아니라 숫양(ram)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어린 양(lamb)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각별히 음미할 것-역주)

뉴 킹제임스 성경에는 수많은 뉴 에이지 번역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the Christ를 정관사 없이 Christ라고 변개했습니다. 리버티 대학의 학장이셨던 노먼 가이슬러(Norman Geisler) 박사님은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라고만 말할 때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의 가장 나쁜 요소는 남성 대명사 he를 쓰는 대신 대문자 O로 시작하는 "the One"(유일자)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 용어는 "유일신론", "범신론", 뉴에이지 운동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중성신" 개념에 근거를 마련해 준 것입니다. 팻 로버슨(Pat Robertson)이 발행하는 <크리스챤 어메리칸,Christian American>이란 2월호 잡지에는 새 역본 편집자들 중의 한명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그녀는 '유일신론'을 자랑하며, 중성자로서의 "여성 신"(god herself)에 대해서 언급하며 '유일자'(the One)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여성 신이거나 중성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 남성 명사인 그(he)대신에 '유일자'(the One)란 말이 나올 때마다 기독교의 역사적 하나님을 내다 버리고 일원론주의자들이 말하는 중성 신으로 대체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요한복음 4:24에서도 뉴 킹제임스에 등장하는 일원론을 볼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라"(God is a Spirit)라고 말씀하고 있는 반면,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부정관사(a)를 삭제하여 "하나님은 영이시니라"(God is Spirit)7)고 말합니다. 알다시피 하나님이 아닌 영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계시록 15:3에서도 이와 유사한 변개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 제가 발견한 가장 놀라운 일은 누가복음 7:19-20의 번역입니다. 킹제임스에서는 "오실 그 분이시니이까?"(he that should come)란 본문은 뉴 킹제임스에서는 'he'를 빼버리고 대문자로 오실 분(Coming One)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거나, 마귀가 그들이 이 부분을 번역할 때 그들을 속여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뉴 에이지와  루시퍼 숭배자들의 여장부인 엘리스 베일리(Alice Bailey)는 <장차 오실 분의 교리,The Doctrine of the Coming One>이란 제목의 책에 "오실 분"(Coming One)이란 누구인가란 장(Chapter)이 있습니다. 그녀가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한 번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날 모든 땅에 살고 있는 인류는 오실 분(Coming One)을 기다려야 한다. ...죽음으로 오실 분의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그리스도의 출현 pp. 64, 188)

그리스도인들은 이 오실 분의 정체가 누구인지 압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은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를 따른 것이니라"(him, whose coming is after the working of Satan). 뉴 에이지 문학에서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오실 분"이란 용어를 뉴 킹제임스에서 사용함으로써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성경에서 보고 싶지 않는  '공통의 어휘'를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의 퇴화성의 또 다른 예는 여호화 증인의 본문이라는 점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령의 본래적인 이름인 "위로자"(Comforter 요14:6)를 "돕는 자"(Helper)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성경에는 요한복음 14:6과 다른 곳에 성령을 늘 돕는 자라고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령께서 인격(person)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는 성령은 단지 바람 또는 힘, 또는 그와 같은 어떤 것이며, 하나님의 어떤 속성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금 뉴 킹제임스 성경은 여호와 증인들이 사용하는 신세계 역본(The New World Translation)이 사용해 왔던 번역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은 제가 기억하기로 10여 차례 지옥이란 단어를 삭제하고 "음부"(hades)란 단어로 대체하였습니다. 하데스란 뉴 에이지에서 즐겨 사용하는 번역입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에서 지옥(hell)이란 단어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13번이나 스올(sheol)이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부정확한 정의와 의미의 사용으로 누구나 좋아하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다시 번역하며 읽어야 할 성경을 갖게 된 것입니다.

뉴 킹제임스 역본은 환란 기간 동안에 온 세상을 채울 우상 숭배를 지지하는 플랫포옴을 조각하는 중입니다. 그때 그들은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더라"(계13:15)란 말씀대로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7:22에 우상 숭배에 관한 바울의 엄한 꾸짖음(너희가 너무나 미신적이도다)이 뉴 킹제임스에서는 온화한 타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너희가 매우 종교적이구나). 미신적(superstitious)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그 어근이 마귀(devil)에 해당합니다! 종교적이란 말로 번역할 수 있는 어휘가 그 구절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분명하게 구분해 주며 종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이방인'(the heathen 시 79:1)이란 말을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정치적 의미를 지닌 '국가들'(nations)이란 말로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마술가(sorcerer)는 더 이상 마술가가 아니라 그저 놀라게 해 주는 자(astonish 행 8:9)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자문해 보십시오. "마술에 걸린 너무나 미신적인 이방인들"(KJV)과 "놀란 매우 종교적인 국가들" 중 어느 문구가 종교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단일 세계 종교란 주제에 적합할까요? 우리는 뉴 킹제임스 성경내에  뉴 에이지 운동을 지지하는 번역에 대해 한 가지 더 언급해야겠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끝"(the end of the world)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뉴 킹제임스는 "이 시대의 끝"(the end of the age)이라고 마태복음 24:3과 신약 성경의 대부분에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뉴 에이지 주의자들이 늘 가르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일련의 시대의 흐름에 대해 믿습니다. 한 세대가 가면 다음 세대가 오는 순환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단지 여러분의 집에 있는 달력만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이 세상이 거대한 재앙(벧후3:10)으로 끝날 것이란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뉴 에이지 주의자들이 믿는 것은 시간을 영원히 순환하며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의 끝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다가오는 새 시대(new age)로 접근 중이라고 믿습니다.

"신약 성경 신학 사전"(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과 같은 10권 짜리 헬라어 성구 사전(제 10권 pp.203-204)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한 헬라어 aion이란 단어가 본문의 문맥에서 공간과 시간의 의미로 쓰일 때, 유대-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세상"(world)으로 번역한 것이 정확하다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 aion이란 단어의 포괄적 용례를 들어 시대(age)로 번역한 것은 그 기원과 함축적인 의미를 볼 때 플라톤에 기원한 것입니다. 새 역본들에서도 "세상"(world)이 헬라어 aion의 적절한 번역임을 인정합니다. 로마서 12:2과 디모데후서 4:10, 그리고 플라톤적 개념으로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곳들에서는 모두 '세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의 출판업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의 전통을 계승했다고 자랑합니다. 뉴 킹제임스의 뉴 에이지 번역은 전통 본문에 따라서만 번역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1881년에 스크리브너의 신약 성경과 뉴 킹제임스의 신약 성경은 1611년 킹제임스 번역자들이 따랐던 본문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이 둘 사이에 나타난 상이점을 세어보면 56개에서 287가지에 이릅니다. 하바드의 동기생이며 "킹제임스에서 신 국제 역본까지의  영어 성경"이란 책을 쓰신 잭 루이스(Jack Lewis) 박사께서도 쓰기를 뉴 킹제임스는 킹제임스의 구약 성경의 전통에서 이탈하였으며, "현대 구약 성경의 본문 비평"(current Old Testament text criticism)과 "1966/1977판 수투가르트(독일) 성경"(1966/1977 edition of the Stuggart Bible p. 332)을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사용된 역사적인 "벤 하임 랍비 성경"(ben Chayyim Rabinic Bible)은 1937년 자유주의 독일 신학자 루돌프 키텔(Rudolf Kittel)이 변개시킨 레닌그라드 MS B19a(벤 아세르 본문)을 사용한 성경입니다. 그는 자기 가족들이 히틀러가 자행한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연루될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구약 성경을 변개시켰다는 혐의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뉴 킹제임스가 사용한 70인역과 벌게이트와 사해 동굴 사본들(뉴 킹제임스의 서문을 보시오)과 같이 최근 발견된 사본들은 "천대에 이르기까지"(시편 105:8), 말씀을 영원히 보장하시겠다는 보존의 교리(시12:5,6)와도 서로 모순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주후 4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세대를 빼먹으셨단 말입니까? 세속적인 진화와 발전이라는 사상이 성경에는 적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뉴 킹제임스 성경의 표지 위에 있는 희미한 666 로고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출판업자 토마스 넬슨(Thomas Nelson)은 이 문양이 하나님의 신격(Godhead)을 나타내는 고대의 그래픽을 고안한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최종 권위이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격을 나타내는 문양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사도행전 17:29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손이라면 사람의 기술(art)과 고안(device)으로 주조해서 금이나 은이나 돌로 만들 물건이 하나님이심과 같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할지니라"

성경에는 그림 상징을 허락하거나 격려한 구절이 단 한 절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그림이든지 말입니다. 형상(images)은 매우 이교도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제 2 계명에서 형상에 관한 경고로 시작하여(출20:4) 사람들이 용의 형상을 경배하는 것으로 끝납니다(계19:20). 성경의 경고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교제하십니다. 사람들은 늘 이 말씀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씀 바탕 문화에서 이미지(그림) 바탕 문화로 옮겨가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아이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성경 비디오를 보거나, 성경 그림책을 봅니다. 말씀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가장한 사진(영화)이나 이미지로부터 얻습니다.

토마스 넬슨이 그 문양이 고대 종교 문양이라고 말한 것은 옳습니다.

패턴 디자인(Pattern Design)을 쓴 아키볼드 그리스티는 666 문형을 일컬어 "그것들은 고대 동양 종교의 문양"이라고 했습니다.  그 문양의 의미는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에서 유명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이란 이교도들의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비슈누, 시바, 브라마-힌두교의 삼위일체). 그러므로 이것은 절대 기독교에서 고안한 문양이 아닙니다. 비록 로마 카톨릭에서 그 문양을 도입하여 성당에서 사용하고 있다해도 말입니다.  토마스 A. 넬슨은 로마 카톨릭 교도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직접 서명한 편지에 "그리스도와 우리의 여인(Lady)안에서 당신의 신실한"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삼위일체입니다.

이 문양은 뉴 에이지 서적 중에 아주 인기있는 <물병자리 음모,The Aquarian Conspiracy>란 책의 표지에도 나옵니다. 비법 전수자들은 666이란 수가 강력한 신비적 수이며, 로고에 교묘하게 새겨지든 공개적으로 표면화되는 상관없이 사용되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이교도의 삼위일체이든 666이란 수이든 성경의 표지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