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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요한일서3:1-24

요절: 요한일서3:16


Ⅰ. 우리를 양자
삼으심 3:1-3


〔1〕사도 요한은 이러한 놀라운 축복의 근원인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1절). 우리가
그의 아들이 되고 또한 아들이라 불리워지는 이와 같은 일은 영원하신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놀라운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로 불려짐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며 기꺼이 우리를 아들이라 부르신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의 표현은 너무나 기이하기 때문에 믿는 마음이 없이는 아무리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에겐 그것이 걸림돌이
되었고 헬라인들에겐 그것이 어리석게 보였습니다. 오직 믿는 자들만이 본문에 있는 것처럼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사도는 믿는 자들의 명예가 세상의 인식을 초월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1절). [그런즉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함이라.](1b) 세상은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따르는 자들의 행복을 알지 못합니다. 세상은 가난하고, 비천하며, 경멸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며, 머지않아 하늘에 거할 자들임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들 뿐 아니라 그들의 주님에 대해서도 세상은 알지 못했습니다(1절).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이 땅에서의 어려움을 기꺼이
견뎌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그네의 땅에, 그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 사이에 거하고 있으며, 그들의 주님도 그들보다 앞서 그렇게
취급받으셨기 때문입니다.


〔3〕사도는 그들의 지위와 권위에 대한 확실한 계시를 기대하며
인내하는 제자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1) 현재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영광스러운 관계를 주장합니다.(2절)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아들이라고 하면 첫째 거듭남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2) 아들 곧 양자로 택함받은 것에 따르는
영광과 권세가 주어져 있다. (3) 하나님의 아들들이 드러나게 되는 때는 결정되어 있다. 법적 지위에서 실제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볼 것임이라]]
(2b) 그러므로 이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주님과 동일한 모습을 취함으로써 알려지고 명백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4) 불신자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주님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4〕사도 요한은 그들에게 순결함을 이룰 것을
촉구합니다(3절). p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3)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들의 주님이 거룩하고 깨끗하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그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자들은 최고의 순결성을 입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의 하늘에 대한 소망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지시하여 촉구할 것입니다. 죄와 더러움에 빠지는 것은 그러한 소망에 전혀
어긋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성결케 되어야 합니다. 소망으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또한 소망으로 순결해져야 합니다.
(골1:27참조)


Ⅱ. 하나님의
자녀의 표시 3:4-10


사도는 다음의 여러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죄에 대하여, 그리고
어두움의 역사와의 모든 교류에 대하여 더 한층 격렬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1〕죄의 본성은 이러하다. 그것은 거룩한 율법과는 상반되는 것이다(4절). 그러므로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대한 거부이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거부일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거부가 되는 것이다.


〔2〕주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를 없애기
위함이다(5절). 그는 죄를 없이 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모범을 따르게 하신다.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위에 계신 그리스도와
교제하기를 기대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최상의 정결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와 교제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3〕죄와 그리스도와는 결코 진실된 연합이 있을 수 없음을
제시한다(6절).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더 이상 죄를 범치 않는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은 그와의 언약 안에 거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강한 빛과 그의 지식 안에 거한다. 그러므로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의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죄에 대한 실제적인 부인은 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크나큰 증거가 된다.


〔4〕의를 행함과 의로운 상태 사이의 관계를 제시한다. 죄를
행하는 것과 의롭게 된 상태는 결코 일치할 수 없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7절). 의를 위하여 즉 신앙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라는 마태복음 5:10의 말씀에서도 나타나듯이 의로움은 성경 여러
곳에서 정당하게 신앙으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의를 행한다는 것은 곧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신앙의 실천은 성실과 양심의 원리 없이는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5〕죄인과 마귀와의 관계를 언급하고 이에 대한 주 그리스도의
의도를 말한다. (1) 죄인과 마귀와의 관계에 대하여: 여기서 '죄를 범한다는 것'은 죄의 세력과 지배 아래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렇게 살아가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인 것이다. (2) 마귀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의 의도와 임무에 대하여(8절): 그리스도는 마귀를 멸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는 죄를 완전히 파멸시킬 때까지 죄를 더욱더 약화시키고 해체시키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멸하시고자 하는
것에 빠지거나 그것을 위해 봉사해서는 안된다.


〔6〕중생과 죄의 폐기와의 관계를 제시하다. 하나님께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9절). 하나님께서 난다는 것은 안으로부터의 새로와 짐이며,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거룩으로 향하는,
올바른 성품의 회복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씨가 속에 거함이요. 새롭게 하는 은혜는 하나의 영속하는 원리이다. 신앙은 하나의 기술도,
습득되어지는 기교나 기예도 아닌, 하나의 새로운 성품인 것이다. 그러므로 새롭게 거듭난 자는 죄를 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는 더이상 죄를
행하는 자리에 있을 수도 죄를 행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로서 났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의 마음
속에는 마귀와 죄의 악의를 드러내 보이는 빛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의 마음은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성향을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영혼은 죄악된 행위들로 나아가게 하는 세력과 성향을 억제하여 금하게 한다. 인간의 마음과 영혼의 경향과 구조가 죄악과 대항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복음서 안에는 인간의 죄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거듭나지 모한 사람은 종교적인 선행에 대하여는 사실상 무능하다. 반면에 중생한 사람은
범죄치 못하는 것이다.


〔7〕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사이를 식별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10절).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로 뱀(마귀)의 자손이 드러난다.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10절). 첫째, 신앙에 대한 태만으로 드러난다. 반대로 그러한
자는 마귀에게 속해 있는 자이다. 둘째, 그리스도안에서 형제된 자들을 미워함으로 드러나다(10절).


Ⅲ. 형제애에 대한
권고(1) 3:11-13


〔1〕사도 요한은 기독교적인 형제애를 권고한다(11절). 우리는
우리 주 예수를 사랑해야 하며 또한 그의 사랑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모든 자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2〕사도는 이러한 사랑과는 상반되며 가인의 행위를 좇는 악행을
행치 말라고 설득하고 있다. 가인은 최초의 뱀의 자손이 되었으며 악한 자에게 속하여지게 되었다. 곧 그는 최초의 악한 자, 곧 마귀를 좇았으며
그를 닮게 되었다. 그의 악의는 결코 끝이 없었다. 그것은 마침내 살인을 범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12절). 악의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들을 증오하고 원망하도록 자극한다.


〔3〕사도는 여기서 선한 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한다(13절). 뱀의 본성은 여전히 세상에 존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뱀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Ⅳ. 형제애에 대한
권고(2) 3:14-19


사랑의 사도 요한은 거룩한 사랑에 대하여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제 이에 대하여 강조하여 상술하기에 이르렀다.


〔1〕사랑은 우리가 생명의 상태로 옮겨졌다는 표시이다(14절).
우리는 이러한 변화의 상태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믿음이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데 형제에 대한 거룩한 사랑이 또한 그 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1) 이 사랑은 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사랑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첫째, 그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하나님의 탁월한 작품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놀라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처럼 사랑하신 이 세상은 마땅히 우리에 의하여 사랑을 받아야
한다(요3:16). 이 사랑은 대적자들에 대한 모든 의무적인 사랑까지도 포함한다.


(2) 이 사랑은 기독교적 공동체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포함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부터, 또한 사망에서 옮겨진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2〕형제들을 미워하는 것은 죽어 있는 상태의 한 표징인
것이다(14절). 사도는 이것을 15절에서 논증한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생명과 번영에 대한 증오이며 결국 그것의 파멸을 바라게까지 된다.
마음으로 살인하는 자는 영생이 그 속에 거할 수 없게 된다.


〔3〕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 거룩한 사랑의 모범은 우리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한다(16절). 위대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의 아들을 죽음에 내어 놓으셨다. 진실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신 자들을 사랑해야
하며 또한 사랑받아야 한다.


〔4〕사도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러한 기독교적 사랑이 어떻게 열매
맺어져야 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1) 그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는 형제들의 안전과 구원을
위해 심지어 죽기까지 고난 당하기를 즐거워할 정도로 뜨거운 것이어야 한다(16절).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살기 위해 얼마나 자제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생활함으로써 얼마나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겠는가!


(2) 그 사랑은 형제들의 궁핍에 대해 마땅히 동정적이고,
인색하지 않으며,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할 것이다(17절).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진 자들은 선하신 하나님과 그들의 선한 형제들을 사랑하여야
하며, 그들을 위하여 재물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형제에 대한 사랑은 그들 안에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에 대한 이러한 사랑이 없는 곳에는 결코 하나님께 대한 진실된 사랑도 없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랑의 또 다른 열매들이 있을
것이다(18절). 아첨이나 발림말들은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오직 거룩한 애정의 신실한 표현과 사랑의 봉사와 수고만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태도인 것이다.


〔5〕이러한 사랑은 신앙에 있어서 우리의 신실성을 증명하며,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갖게 해 줄 것이다(19절). 믿음 안에서 우리의 성실을 확신하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우리의 내적 평화를
확보하는 길은 사랑의 수고를 풍성히 베푸는 데 있다.


Ⅴ. 양심의 증거
3:20-22


〔1〕사도는 여기서 양심의 심판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 반성하여 판단하는 능력인데 이에 의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식할수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상태에 대해 판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양심과도 같은 것이다. 양심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재판을 소집하여 하나님 대신 재판을 수행한다. 만일
양심이 우리를 책망한다면, 하나님은 더욱 그리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양심보다 더 크신 증거자이며, 우리에 대하여 양심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시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보냐(20절). 만일 양심이 우리를 무죄라 하면 하나님 역시 그렇게 판단 내리실
것이다(21절).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시며 심판날에 우리를 죄없다 하시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심에
귀를 기울여 양심의 호소에 민감해야 할 것이며, 열심히 주의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2〕사도는 또한 하나님께 대해 선한 양심을 가진 자들의 특권을
말한다. 그들은 하늘에 소유권이 있다. 즉 그들의 간구는 하늘에서 받아들여진다(22절). 이렇듯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자들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으로써 축복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간구를 들어 주시리라는 확신을
소유하게 된다.


Ⅵ. 계명을 지킬
것을 권고함 3:23,24


〔1〕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인가(23절).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즉 하나님의 아들이며 '기름부음을 받은 구세주라는 그 이름이 계시하는 바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둘째, 판단과
양심으로 그를 인정하는 것이다. 셋째, 그가 구속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실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 이유는 아들을 통해서만이 우리가 아버지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23절). 사람들을 위한 선한 뜻이 하늘로부터 선포되었듯이 그 사람들을 위한 선한 뜻은 하나님과 천국으로 나아가는 자들의 마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2〕이러한 계명을 순종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축복이 있다.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하나님과 사귀는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가에 대한 확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영혼의 상태로써 분별된다(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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