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요한복음 2강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 요 1:1-5
요절: 요 1:1

요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기 위한 책입니다(20:30-31).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이시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란 사실을 철저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 복음을 통해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있게 알 수 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 1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입증하는 세 가지 방법으로 일곱 가지씩 특징을 제시했습니다. 1장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1장의 전체적인 개요를 살펴 보겠습니다.

• 예수님은 자신의 타이틀(이름들)을 통해 증거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말씀입니다(1-3, 4).

둘째, 예수님은 빛이십니다(1:4-13).

셋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1:15-18, 30-34,49).

넷째,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1:41).

다섯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1:29).

여섯째,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1:49).

일곱째,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십니다(50-51). 예수님에게 붙여진 이런 타이틀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에게만 사용될 수 있는 이름들입니다.

•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1-4). 창조 사역자로서 자신을 계시하심

둘째, 예수님은 구원을 주십니다(9-13). 구원자로서 자신을 계시하심

셋째, 예수님은 하나님을 계시하십니다(15-18).

넷째, 예수님은 성령으로 침례를 주십니다(33). 성령 침례를 주시는 자로서 계시하심

다섯째, 예수님은 사람을 다 아십니다(42,47-48). 전지하신 분으로서 자신을 계시하심

여섯째, 예수님은 죄를 제거하십니다(29). 죄의 제거자로서 자신을 계시하심-창1:28참조.

일곱째, 예수님은 하늘의 문을 여시고 하늘과 땅의 사닥다리가 되십니다(50-51). 중보자로서 자신을 계시하심

• 예수님은 증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했습니다.

첫째, 침례인 요한의 증언입니다(7,15,29). 침례인 요한은 빛의 증거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전령입니다.

둘째, 사도 요한의 증언입니다(14).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요한은 목격자로서 증인입니다.

셋째, 구약의 대언자들입니다(23,45). 대언자들은 주님의 오심, 고난과 영광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있게 될 영광을 미리 증거해 주실 때에 /그것들이/ 무엇을 혹은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 탐구하였느니라.](벧전1:11). 대언자 이사야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장 구체적이고 분명한 대언을 많이 했습니다.

넷째, 성령님이십니다(33-34).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다섯째, 부름받은 안드레는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라고 베드로에게 증거했습니다(41).

여섯째, 부름받은 빌립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45).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대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으니 곧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니라, 하매...](45).

일곱째, 나다나엘입니다(49). [나다나엘이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로소이다, 하매](49).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했습니다.

요한 복음 1장에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란 증거는 넘치도록 풍성합니다.

1절입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 이 말씀은 창세기 1:1의 시작과 같습니다. “처음에...”(In the beginning). 우리는 창세기 1:1에 “처음에 하나님이...”라고 시작되는 말씀을 통해 창조주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처음에 말씀이...”로 시작되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접하게 됩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란 본문의 내재적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 두 권은 마귀들의 가장 강력한 공격을 받습니다. 창세기는 사람들에게 과학이란 이름으로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이 공격을 받았고, 빈약한 증거와 증명되지 않는 학설과 이론으로 교육 현장에서 사실처럼 가르침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공격했습니다. 반면 요한 복음은 사람들에게 문서 이론, 고고학, 사본학, 본문 비평가들에게 주로 공격을 받고 있으며, 빈약한 자료와 이론을 바탕으로 거짓을 진실처럼 가르침으로써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공격받고 있습니다.

말씀(Word)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동시에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 없이는 도저히 설명을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참 하나님에 대한 점진적 계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는 참 하나님이시니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존하는 왕이시로다. 그분의 진노에 땅이 떨고 민족들이 능히 그분의 격노를 견디지 못하느니라.](렘10:10). [주]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주란 여호와 하나님(LORD)을 말하는 것을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한 분 하나님만 언급되어 있습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둘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 [또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사 우리로 하여금 진실하신 분을 알게 하신 것과 또 우리가 진실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시라.](요일5:20). 여기서 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란 사실을 배웁니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말한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 신약에서 계시되어 있음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습니다.

다시 1절을 보십시오.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 말씀(Word)은 말씀들(words)의 주체입니다. 마치 성령(Spirit)이 있고 영들(spirits)이 있고, 하나님(God)이 있고 신들(gods)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Son)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들(sons)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Word)이신 고로 우리는 기록된 말씀(words)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words)로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과 사상과 감정과 의지를 표현할 수 있듯이, 하나님은 말씀(Word)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에 대해 모두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들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말(단어)은 글자로 구성됩니다. 글자는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예수님은 글자이십니다. 주님은 스스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계1:8,11, 21:6,22:13)라고 4번이나 선포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은 지어졌습니다(히11:3). 하나님의 말씀이신 분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말씀들은 같은 신격과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시고, 성경은 말씀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Incarnate Word(성육신한 말씀)이시고, 성경은 기록된 말씀입니다(written words). 이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나님)과 말씀들(성경)의 유사점을 찾아보면 백 가지가 훨씬 넘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둘 다 완전합니다(마5:48,야1:25). 하나님이 완전하시듯이, 성경은 완전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성경을 “자유롭게 하는 완전한 법”이라고 했습니다(약1:25). 둘 다 영원합니다(시90:2, 마24:35). 하나님이 영원하시듯 성경은 영원합니다. 성경의 일점 일획도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둘 다 빛입니다(요일1:5 시119:105). 하나님은 빛이시오,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요일1:5)고 말씀하시듯이 말씀은 우리 발에 등이요, 빛입니다. 둘 다 영입니다(요4:24 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듯, 말씀 역시 영이십니다. 둘 다 받아들여집니다(요1:12 막4:20).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받아들여지듯, 말씀 역시 믿는 자들 속에 받아들여집니다. 둘 다 거부됩니다(요12:48 삼상15:23). 하나님이 불신자들에게 배척받으시듯이 성경 역시 불신자들에게 배척받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수 없이 볼 수 있습니다. 심판자 하나님은 말씀으로 심판하시고(요12:48), 구원자 하나님은 말씀으로 구원하시며(약1:21),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참되시며(계21:5),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 역시 신실하시며(계21:5),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 역시 거룩한 말씀이며(요17:17, 딤후3:15), 순결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 역시 순결합니다(잠30:5).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로우시며(행14:3,20:32), 두려우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며(시119:161),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듯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벧전3:1). 권능의 하나님은 그 말씀 역시 권능의 말씀(히1:3)이며, 위로자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롬15:4)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높임을 받으시듯 하나님의 말씀 역시 가장 높임을 받으십니다(시138:2). 우리는 이런 예를 부지기수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정확하게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란 의미입니다.

다시 한번 본문을 보겠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 이 구절은 요한일서 5:7과 반드시 연관시켜 보아야 합니다. [이는 하늘에 증거하시는 세 분이 계시기 때문이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한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이 두 구절을 연관시켜서 볼 때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확고 부동한 불변의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중에 팔리고 있는 모든 현대 역본들 가운데 이 구절이 있는 성경은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하고는 단 한 권도 없습니다.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이 이 본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발원된 모든 사본들은 이 본문을 빼버렸습니다. 이는 그들이 삼위일체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제들에게 얼굴을 상하시고 배반당하시고, 못 박히셨듯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역시 교회 내에서 배척되고, 상하고, 못 박히고 있습니다. 배교한 유대인들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왕으로 삼기 보다 로마의 황제 카이사를 외쳤듯이 오늘날 성도들은 순수하게 보존된, 완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킹제임스 성경대신 NIV, RSV, NASV를 외칩니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풀어 주고자 했지만 민중들은 바라바를 선택하고, 바라바를 외쳤듯이,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보다는 첨가와 삭제, 변질된 현대 역본들을 선택하며, ‘외경’이 들어있는 카톨릭 성경을 달라고 외칩니다. 카이사가 유대인의 왕이 아니듯이 바라바가 그들의 구원자가 아니듯이, 현대 역본은 결코 우리들의 성경이 아닙니다.

2-3절입니다.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느니라.](2-3). 창조주는 누구신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창조주이십니다. 흔히 사람들이 하나님이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만 안다면 크게 잘 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이기 이전에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에서의 삼위일체를 보면 이렇습니다. [[주]의 말씀(예수 그리스도)으로 하늘들이 만들어지고 하늘들의 모든 무리가 그분의 입의 호흡(성령)으로 만들어졌도다.](시33:6). 사도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니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분 안에 있으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니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고전8:6). 한 하나님 곧 아버지와 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히 동격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동시에 창조주입니다. 구약의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이 따로 있을 수 없고, 다른 분이 결코 아닙니다. [이는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음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 또한 그분께서는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골1:16~17). 주님의 창조 사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신 천지창조의 사역보다 더 큰 사역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혼들의 영을 살리는 새 창조 행위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복음의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고 계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우리는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주님은 복음을 통해 우리의 속 사람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골3:10). 이런 죽은 영혼들을 향한 새 생명의 창조 사역은 지금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4).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갖는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진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요, 피조되지 않는 생명이며, 영원한 생명입니다.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할 때 그 생명입니다.

인간의 육체적 생명은 피 속에 있습니다(레17:14). 인간의 영적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피 속에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피는 우리의 속죄를 위한 값으로 지불되었습니다(마26:28, 요일1:7). 주님은 부활하셨을 때 피가 없으셨습니다(눅24:39). 우리 역시 부활한 몸을 입을 때 주님과 같은 몸을 갖게 될 것인데, 그 때는 피가 없는 육체를 입을 것입니다. 영원 가운데서 우리가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4). 인간은 누구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 안에는 죽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은 전적으로 생명 그 자체일 뿐 죽음이 없습니다. 생명 자체란 말은 영원한 생명이란 뜻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그는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5:24).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란 말은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생명을 말합니다. 영존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 올 때 우리는 빛을 얻게 됩니다. 사람은 빛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영적 실체에 대해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습니다. 생명인 주님을 영접할 때 그 동안 어둠에 가려져 있던 많은 것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죄의 실체를 봅니다. 하늘과 지옥에 대한 실체를 보게 됩니다. 옳고 그름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종말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비롯한 각종 영적 존재들에 대해 가려졌던 모든 것들이 열리게 됩니다. 말씀대로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빛의 속성이 무엇입니까?

첫째, 빛은 밝히는 것입니다. 빛을 비추면 숨겨진 것이 드러납니다. 은밀한 것들이 밝혀집니다. 빛은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분께서 감추어진 어둠의 일들을 빛으로 밝히시고 마음의 의도들을 드러내시리니 그때에야 비로소 각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리라.](고전4:5). 어둠의 일들을 빛으로 밝히십니다.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밝히 드러나게 되나니 이는 무엇이든지 밝히 드러나게 하는 것은 다 빛이기 때문이라.](엡5:13).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이 사람들의 은밀한 행위, 숨은 동기, 감추어진 욕망, 죄성을 밝히 드러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들도 밝히 드러내 주십니다. 빛이 없는 동안에는 우리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빛이 없으면 우리의 육안은 사물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생명의 빛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어둠으로 인해 죄와 더러움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내 안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은 아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생명의 빛이 나에게 비치기 시작하면 자신의 본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게 됩니다.

둘째, 빛을 생명을 자라게 하고, 열매맺게 합니다. 빛이 없으면 어떤 나무도 과실을 맺지 못합니다. 빛이 약해도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생명이 자라는데 빛을 필수적입니다. 빛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이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걸으라. (이는 /성/령의 열매가 모든 선함과 의와 진리 안에 있기 때문이라.)](엡5:8-9).

셋째, 빛은 달콤한 것입니다. [진실로 빛은 달콤한 것이요, 눈으로 해를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로다.](전11:7). 우리는 모두 낮의 자녀들이요, 빛의 자녀들입니다. 생명의 빛 되신 주님은 언제나 달콤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둠 속에서는 불안, 공포, 두려움, 초조함을 느끼지만 빛 가운데서는 평안과 기쁨을 느낍니다. 만약 반대라면 정신과에 가보아야 할 것입니다. 빛은 기쁨을 줍니다. [의로운 자의 빛은 기뻐하나 사악한 자의 등불은 꺼지리라.](잠13:9). [눈의 밝은 빛은 마음을 기쁘게 하며 좋은 소식은 뼈를 기름지게 하느니라.](잠15:30).

넷째, 빛은 어둠과 사귈 수 없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창1:18).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공평하지 못한 멍에를 메지 말라. 의와 불의가 어찌 사귀겠으며 빛과 어둠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으며](고후6:14)라고 합니다. 빛은 어둠을 드러나게 하고, 자연스럽게 분리합니다. 여러분이 빛의 자녀가 되는 순간 어둠의 자녀들과는 저절로 분리와 단절이 생깁니다. 함께 할래야 함께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빛이란 사실을 압니다. [그런즉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요일1:5). 빛이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4)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해 주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빛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주님이 계신 새 예루살렘에는 해와 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생명이 우리의 빛이 되고, 이 빛을 통해 모든 좋은 선물이 내려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어떤 성령의 선물(은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1:17).

5절을 보십시오. [이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5). 빛이 도달하는 곳에는 어둠이 사라집니다. 빛이 도달하면 그곳에는 열이 함께 전달되어 온기가 있습니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이 곳 지구까지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전선이나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빛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이 바로 생명의 빛입니다.

오늘날 무선 통신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한결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많은 전송 자료들을 어떻게 전달합니까? 나에게 있는 원본을 어딘가에 송·수신 장치만 있다면 그대로 보낼 수 있습니다. 음성이든 사진이든 무슨 정보라도 그대로 전송됩니다. 지구 반대편의 소식도 1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집에 있는 T.V 라디오는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전파를 매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거듭난 영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비추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대로 전송되며, 우리는 그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신 장치에만 문제가 없다면 전 세계의 모든 방송과 전파를 다 잡을 수 있듯이, 믿음으로 거듭난 영만 있으면 성령의 조명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생명의 빛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성령을 소유해야 합니다. 구원받아야 합니다.

다시 본문을 보십시오. [이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5). 왜 그렇습니까? 고장난 T.V나 라디오, 셀룰러 폰이 방송국이나 기지국에서 송출하는 전파를 통해 정보를 받지 못하듯이, 죄인들은 지성의 눈이 멀고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천둥소리로 알고, 빛이 비추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빛이 없어도 사물을 볼 수 없지만 빛이 비취어도 보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5절 말씀은 ‘빛의 부재’에 기인한 문제가 아니라 ‘빛을 인식하지 못하는 눈의 문제요, 인식 능력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고쳐 주시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주님의 구원 사역은 눈을 열어주어 빛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함이요, 또 그들로 하여금 죄들의 용서를 받고 내 안에 있는 믿음으로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 가운데서 상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더이다.](행26:18).

주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빛은 지금도 변함없이 저 하늘의 태양처럼 찬란히 비취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빛을 미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책망받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빛을 미워하고, 나아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