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요한복음 3강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말씀: 요 1:6-13
요절: 요 1:12

이 땅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경제적 기준에 따라 부자와 가난한 자, 교육 정도에 따라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외모에 따라 잘 생긴 사람 못 생긴 사람, 성격에 따라 인품이 좋은 사람과 못 되먹은 사람 등등...우리는 무엇을 잣대로 하느냐?에 따라 별별 사람을 다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외모를 기준으로 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이는 [주] 너희 하나님이 신(神)들의 신이시요, 주(主)들의 {주}시요, 위대하시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라. 그분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대가를 받지 아니하시고](신10:17). 사람들은 돈, 가문, 인격, 성품, 교육, 인물, 힘, 권력, 피부 색, 인종, 민족, 언어, 국적, 종교 등 그 사람이 가진 것들로 판단하고 나눕니다. 우리의 판단 기준은 언제나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사람인가? 아닌가?는 이런 모든 것보다 중요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을 기준으로 볼 때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그리스도인, 거듭난 사람-이 있고, 자연인이 있을 뿐입니다(고전2:13-14).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이 있고,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칭 선지자, 자칭 교사, 자칭 하나님의 사람이 오늘날 교계에 넘쳐 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임명한 목사, 선교사, 부흥사들이 있는 반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목사, 선교사, 부흥사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6). 성경은 요한의 학벌이나 권세나 지적 수준이나 외모나 성품이나 인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런 외모를 취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재판을 할 때도 외모로 보지 말도록 엄히 명령하셨습니다(신16:19).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이는 [주]가 보는 것이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삼상16:7).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본능적으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마다 주님은 우리를 책망하십니다. [만일 너희가 은밀히 사람들을 외모로 취할진대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를 책망하시리니](욥13:10). 세상에서는 부자, 학자, 권력자, 실력자들은 어디에서나 대우를 받습니다. 인물이 좋아도 인정을 받습니다. 특출한 재주가 있어도 인정을 받습니다. 외모 지상주의는 갈수록 심해져서 요즘은 얼짱, 몸짱이란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청하건대 당신들은 나로 하여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게 하며 사람에게 아첨하는 호칭을 붙이지 말게 할지니](욥32:21). 하나님께 필요한 사람은 돈 많은 사람, 힘센 사람, 인물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신33:1, 수14:6).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한 것이 이러하니라.](신33:1). ‘하나님의 사람 모세’란 말은 성경에 자주 반복됩니다. 사무엘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르되, 보소서, 이제 이 도시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그는 존귀한 사람이니이다.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이루어지니 이제 우리가 거기로 가사이다. 혹시 그가 우리의 갈 길을 보여 줄까 하나이다, 하므로](삼상9:6). 스마야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왕상12:22). 엘리야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그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이로써 내가 이제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주]의 말씀이 진리인 줄 아나이다, 하니라.](왕상17:24). 엘리사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왕하5:8). 디모데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 하나님의 사람아, 너는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라.](딤전6:11). 하나님의 사람이란 것보다 더 영광스런 타이틀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은 누구를 위한 책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영감으로 주어진 책이요, 하나님의 사람들을 완전하게 하기 위한 책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7).

아무리 부자요, 학자요, 실력자라 해도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존중하실 뿐 돈이 많다거나 머리가 좋다거나 인물이 좋다거나 가문이 좋다는 이유로 중히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물며 통치자들을 외모로 받지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중히 여기지 아니하시는 그분께 /그리 말할 수/ 있겠느냐? 이는 그분께서 그들을 다 자신의 손으로 지으셨기 때문이라.](욥34:19).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세상을 정죄하고, 죄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합니다. 이들은 빛을 남기고, 열매를 남깁니다. 이들은 교회를 세우기도 하고, 신학교를 세우기도 하고, 문서 선교를 위한 출판사를 세우기도 하고, 선교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용하실 또 다른 사람을 찾기보다는 그들이 남겨놓은 단체, 조직, 학교 등을 운영하고 유지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 버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 대신 이미 제도화된 틀을 유지하려는데 온 힘을 기울입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다시 6절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6).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부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보내시기 전에 먼저 부르십니다. 모세를 이스라엘에 보내시기 전에 주님은 먼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부름받지 않는 사람이 보냄 받는 일은 없습니다. 주님은 모세를 산꼭대기로 부르셨습니다(출19:20,24:16). 주님은 부르셔서 말씀을 주시고, 사명을 주십니다. 아론과 미리암 역시 주님이 부르셨습니다(민12:5). 사무엘 역시 부름 받았습니다. [[주]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므로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삼상3:4). 부르심이 없이는 보내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오니라.](막3:13). 그들은 부르심을 받았고, 또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부르심을 받았고,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부르심이 있습니까? 부르심이야말로 사역의 첫 번째 자격 요건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부르심을 입었고, 누가 보냄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에게 주님의 부르심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서옫들이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히 구별되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편지하노니](고전1:2). 그렇다면 성도란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외모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보라.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

부르심의 기준은 부르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요, 자신의 목적과 은혜에 따른 것이라. 이 은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로되](딤후1:9). 하나님은 죄인들을 향해 “다 내게로 오라”(마12:28) 부르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오라”(사55:1, 계22:17). 주님은 장막절의 명절에 유대인들을 향해 외치셨습니다. [그 명절의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 주님의 부르심은 온 세상에 퍼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부르심에 응답했다면 주님은 여러분을 다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도록 보내셨습니다(마28:19-20). 하나님의 사람은 부름받은 사람이요,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부름받은 성도들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갈5:13,엡4:1).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엡1:18).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믿음의 경주를 달려야 합니다(빌3:14).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딤전6:12).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히3:1).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벧전2:21). [이는 참으로 너희가 이것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니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남기사 너희로 하여금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벧전2:21).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설을 욕설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욕설을 욕설로 갚지 말고 오히려 그와 반대로 축복하라. 이런 일을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줄 아나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복을 상속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3:9). 이것이 부르심의 목적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들었다면 보내심의 음성도 들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부르신 주님은 사도 바울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다시 6절입니다. 하나님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使者)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주}(主)가 갑자기 자신의 /성/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가 기뻐하는 언약의 사자라. 보라, 그가 임하리로다.](말3:1). 주님은 요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요한의 사역입니다. [그가 또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그분보다 앞서 가서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불순종하는 자를 의인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며 {주}를 위하여 예비된 한 백성을 준비하리라.](눅1:17/말4:5).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알았고, 죽기까지 순종했습니다. 요한이 물로 침례를 주면서 한 일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참으로 요한이 회개의 침례로 침례를 주며 백성에게 말하되 너희가 내 뒤에 오시는 분을 믿어야 하리라 하였으니 이분은 곧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하거늘](행19:4).

7절입니다. [그가 증거하러 왔으니 이것은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통해 믿게 하려 함이라.](7). 침례인 요한을 보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증거”입니다.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자신의 증거를 통해 예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칭찬이나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아들 이삭의 신부를 구하도록 보냄을 받았던 엘리에셀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아브라함과 이삭만 드러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증거 하셨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을 증거 하십니다. 침례인 요한은 증거하러 왔습니다. 그는 민족의 해방이이나 독립 투사로 온 것이 아니며, 애국 청년회나 학교를 세우거나 조직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러 왔으며, 자신을 통하여 사람들을 믿게 하려 했습니다. 이것이 보냄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구약의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에는 하나님이 보내지 않는 대언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들은 거짓 증거로 하나님이 아닌 거짓을 믿게 합니다. 하나냐와 스마야란 사람은 예레미야, 에스겔과는 반대로 보냄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대언했습니다. [이에 대언자 예레미야가 대언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야, 이제 너는 들으라. [주]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으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렘28:15). [포로 된 모든 자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주]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 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아니하였는데도 그가 너희에게 대언하고 너희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렘29:31). 이 얼마나 가증스런 일입니까? 우리는 이런 예를 허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사람은 증거하러 왔으며, 자신의 증거를 통해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전부입니다.

8절입니다.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라.](8). 빛의 증거자는 빛이 아닙니다. 요한은 빛에 대하여 증거하라고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이는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몇몇 사람들은 침례인 요한을 메시야인 줄 알았습니다. 요한은 빛이 아니라 빛의 증거자입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자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요한에게 주신 임무가 “빛에 대하여 증거”하라고 보내셨듯이 사도들, 제자들, 성도들의 임무는 오직 증거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회가 증거의 사역을 뒤로하면 이미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주의 천사는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풀어 주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몸을 피해 있으라. 지혜롭게 처신해라. 과격하게 전하지 말고 생활로서, 삶의 본을 보임으로 전하라...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다 말하라, 하매](행5:20). 조금도 위축되거나 물러나지 말고, 곧 바로 성전에 서서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사도 바울을 왜 택하셨습니까?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그는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내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내가 택한 그릇이라.](행9:15). 증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복음의 증인, 십자가의 전달자, 부활의 증인이 성도들의 신분입니다. 진실한 증인은 불의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증인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증인은 위험이 다가와도 침묵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명령하사 백성에게 선포하게 하시되 하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 정하신 이가 바로 그분이심을 증거하게 하셨고](행10:42). 증거하지 않는 사람은 증인의 자격이 없습니다. 바울은 돌에 맞을 것을 알면서도, 배척받을 줄을 알면서도 증거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왔을 때에 바울이 영(靈) 안에서 눌림을 받아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니](행18:5).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거하였노라.](행20:21). 왜 이렇게 증거했습니까? 그는 증거하라고 보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부름을 받았고, 보냄을 받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죽기까지 한 일은 교파를 하나 세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학교를 세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역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결코 나를 움직이지 못하며 또한 내가 나의 생명조차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니 이것은 내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님께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기쁨으로 끝마치고자 함이라.](행20:24). 그가 감옥에서도 쉬지 않고 한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 증거였습니다. [이에 그들이 한 날을 정하고 많은 사람이 그의 숙소로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왕국을 풀어 설명하여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하여 그들을 설득시키더라.](행28:23). 침례인 요한에게 주어진 사역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역이요, 오늘날 교회에게 주어진 사역임을 우리는 깊이 명심하고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9절입니다. [이것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9). 하늘의 태양이 인류의 첫 사람 아담 때부터 이후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없이 빛을 주듯이, 육신을 입으신 참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다 비추십니다. 인종, 민족, 국경, 언어, 빈부귀천, 남녀노소, 학력 등과 같은 일체의 외모에 상관없이 참 빛이 비췹니다. 복음의 빛은 온 세상에 다 비취고 있습니다.

빛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빛이 없으면 생명이 자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누구도 새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는 영적인 실체에 대한 진리를 전혀 볼 수 없습니다. 태양이 비추는 대낮에 우리는 환히 볼 수 있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없듯이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어둠에 거하지 않게 됩니다. 몇몇 사람들은 촛불이나 인공 조명등으로 태양을 대신하려고 하며, 거기에 만족합니다. 이는 마치 사이비 종교나 유사 종교, 희미한 빛을 주는 도덕 윤리적 가르침 정도에 만족하며 태양을 멀리하는 야행성 피조물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거짓 빛이 너무나 많습니다. 거짓 종교도 많습니다. 마귀 역시 빛의 천사로 자신을 가장합니다. 이런 거짓 빛은 사람들에게 거짓 믿음, 거짓 소망을 심어 줍니다. 인공 조명이 아무리 밝아도 생명을 줄 수 없듯이, 거짓 빛은 새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전에 할로겐 램프란 것이 만들어져서 “자연 빛(태양 광선)과 가장 근접한 빛”이란 광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비슷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말한 유사점은 ‘눈의 피로도’에서만 측정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습니다. 심지어 손으로 빛을 가리면 그 손 등에 비추시고, 빛을 거부하여 돌아서면 그 등에 비추십니다. 이것이 영광스런 복음의 광채이며, 은혜의 시대에 누리는 특권입니다.

10절입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고](10). 왜 세상은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까? 이 세상을 마귀가 통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왕권을 주셨지만 아담은 마귀에게 그 통치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통치권을 주셨지만 역시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이란 국가를 세우시고 그들을 백성으로 삼으시고 신정 통치를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배교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 왕권을 주시고 이 땅에 보내셨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못 박아 버렸습니다. 사도 요한은 온 세상은 사악함 가운데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마귀는 주님께 자신이 이 세상 왕국의 소유자란 사실을 당당히 선포했습니다. [그분께 이르되, 이 모든 권능과 이 왕국들의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그 까닭은 그것이 내게 넘겨졌으므로 누구든지 내가 원하는 자에게 그것을 줄 것이기 때문이니](눅4:16). 사도 요한은 마귀가 다스리는 이 세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또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사악함 가운데 있는 것이며](요일5:19). 주님은 현 세상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선포하셨습니다(마12:39). 이런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내주셨으니](갈1:4). 세상은 결코 주님을 알지 못합니다.

11절입니다.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영접(迎接)하지 아니하였으나](11). 주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셨다는 것은 주님께서 유대인에게서 나셨음을 말합니다. 주님은 구약의 약속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경배하고 우리는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요4:22). 여기서 구원이란 구원자(구주)를 말합니다. 구원자는 유대인에게서 난다는 말입니다. 유대인의 또 다른 특권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모든 면에서 많으니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신 것이라](롬3:1-2). 하나님은 구원자(구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복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영적인 복이었습니다. [이 날 내가 너희 앞에 두는 이 모든 율법과 같이 의로운 법규와 법도를 가진 큰 민족이 어디 있느냐?](신4:8)고 말씀하실 정도로 큰 복입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민족이요, 택하신 백성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라. 그들에게는 양자(養子) 삼으심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속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체에 관한 한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9:4-5).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만들었으나 세상은 알지 못하고, 주님은 자기 백성에게 나셨지만 그들은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역설과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이 주인을 몰라보고, 자식이 부모를 몰라보고, 학생이 선생을 몰라보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백성이 주님을 알지 못합니다.

12절입니다. [그분을 영접한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으니](12).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 즉 구주요 그리스도로, 세상의 구원자요,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자,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말씀(WORD)으로 받아들이는 자, 창조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예외 없이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영접이란 받아들인다는 말의 한자어입니다. 이 말은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구원은 목이 마른 사람이 물을 받아먹는 것만큼이나 쉽습니다. 초청장을 건네 줄 때 받는 것처럼 쉽습니다. 구원은 선물을 받는 것처럼 쉽습니다.

온 세상은 우상들이나 피조물들을 받아들이는데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지만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는 못하는데, 이는 우리의 본성이 빛을 거부하는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과 달리 유대인들은 수 천년 동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은 그들 안에도 역시 빛이 없었기 때문이요, 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3:19을 보십시오.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사람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유일한 이유는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여기서 잠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욥기 38:7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실 때 기쁨으로 노래하고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 1:2에서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음을 봅니다. 이는 창조의 상태가 미완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심판의 결과란 사실을 예레미야 4:23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환란 문맥인데 심판의 결과가 창세기 1:2의 모습과 같은 동일한 어구를 사용하고 있음을 볼 때 창세기 1:2이 오늘날 근본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창조의 처음 단계가 아니라 첫 창조의 심판으로 인한 결과란 사실을 봅니다. 창세기 1:2에서 시작된 재창조의 역사는 1:28에서 이 땅의 주인으로 아담이 세워졌고,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관리할 직분을 맡았습니다. 이렇게 되어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를 얻습니다(눅3:38).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형상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이 아들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形像)이시요, 모든 피조물의 처음 나신 분이시니](골1:15). [이 아들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라. 그분께서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붙드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후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1:3). 하지만 아담은 곧 범죄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림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란 지위 대신 영적으로는 마귀의 아들(요8:44, 요일3:10)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마귀는 아담으로부터 이 땅의 왕좌를 찬탈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자기 백성들을 불러 내렸고, 이 땅에 자기 수하들을 늘려나갔는데 그 사건이 창세기 6장의 일입니다. 이전에 이 땅을 소유했던 하나님의 아들들은 자기 처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사람의 딸들과 결혼함으로 땅은 폭력과 불법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또 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삼으니라.](창6:2). 이들의 결혼으로 태어난 아들들이 고대의 용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시고, 아담이 잃어버린 이 땅을 노아에게 이 땅을 주었습니다. 노아는 아담과 거의 동일한 명령을 받았습니다(창9:1,2). 하지만 노아 역시 술취함으로 범죄하고 그의 후손들은 바벨탑을 쌓음으로 하나님께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번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창12:1-3). 그리고 이삭, 야곱에게 그 지위를 계승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립니다. 호세아 1:10, [그러할지라도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아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또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하리라.](호1:10). 하지만 이스라엘 역시 이 땅을 차지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범죄 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이 분이 이 땅의 주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이 오신 후로 하나님은 누구든지 그를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써 장차 그들이 이 땅을 통치하고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크리스천들이 마귀들의 공격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 때 그들이 소유했던 타이틀, 그들이 소유했던 이 땅의 지배권을 우리가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정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노아에게 주신 명령과 동일한 명령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복음을 통해 점점 더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낳아서 길러야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회복되어 다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이며, 우리 역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이 땅에서 천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슥8:20-23, 계20:1-5, 벧후1:11).

우리는 영원에서 영원에 이르는 왕국에 관련된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에 눈을 떠야 합니다. 많은 독재자들이 유난히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 될 것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약탈자들로서 주인의 아들을 죽임으로써 자신들이 이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도 이런 일은 얼마나 많이 자행됩니까? 정당한 유산 상속자를 죽여 버리고 자신들이 그 재산을 차지하려고 음모를 꾸미는 따위의 일은 매우 흔하게 발생합니다. 마찬가지로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죽이고, 우리가 받게 될 유산의 상속에 대해 무지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하나님의 상속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새 역본들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을 지워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들(children)이라고 대체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런 약속들을 모조리 없애 버렸습니다. 새 역본들처럼 아들이란 단어를 자녀란 단어로 바꾸는 즉시 땅과 유업에 관련된 모든 약속들의 링크가 다 깨져 버리고 가려져 버립니다. 여러분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가졌다는 것은 여러분의 확실한 신분 증명서를 가진 것이며, 여러분이 받게될 상속의 유업이 무엇인지를 알고 소유한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들이니라.](요1:13). ‘이들은’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혈통으로나'란 말은 누구도 모태로부터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말입니다. 모태 신앙이란 말이 얼마나 비성경적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혈통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 가문이란 말은 있을 수 있어도, 크리스찬 혈통이란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혈통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부모가 믿는다고 해서 구원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육신의 뜻으로나’란 말은 사람의 선행, 자선, 수행, 종교 행위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육신의 노력, 의지력, 정신력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구원받기 위한 노력,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행위는 구원받은 후에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상급을 받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제 아들 윤 동주는 Mr. Yoon과 Mrs. Yoon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들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노력, 행위, 땀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남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태어난 자들만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란 말씀은 어떤 사람이 창시자가 된 종교와 철학, 가르침, 의식, 체계 등을 통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뜻으로나’란 말씀은 침례나 교회 회원이 되거나 어떤 종교 행사에 참여하거나 입문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종교도 사람을 거듭나게 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뜻을 세워 굳은 결심으로 평생은 종교가 가르치는 모든 덕목들을 지켰다 해도 그것은 거듭남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거듭남은 생명의 문제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간증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몇 년간 성경 교사를 했지만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었지만 그는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어떻게 거듭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요,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과 사람이 되셔서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의 역사적 사실과 영적 진리를 그대로 믿어야 거듭나는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성경을 읽고, 신학을 연구하면서도 끝내 구원에 이르지 못한 친구를 알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란 말씀은 구원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란 사실을 말씀해 줍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씀하신 성경의 기록들을 믿는 것입니다. 나에 대해 성경이 말한 바를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새 생명의 탄생, 영적 출생이 있습니다. 이는 육신의 부모로부터의 탄생과 전혀 다른 하나님으로부터의 출생입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행위, 우리의 삶, 우리의 인격, 외모를 보시기 전에 우리의 생명을 보십니다. 누구의 자녀인가?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가?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면 그는 잃어버린 자요, 구원과는 무관한 사람입니다. 주님은 갈보리에서 죽으셔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우리에게 임한 죄와 저주를 모두 제거하셨습니다.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을 영접할 때 여러분은 거듭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음이요,](갈3:2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며,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모든 사람은 두 번의 출생이 필요합니다. 육신의 아버지만 있고, 영들의 아버지가 없다면 그는 잃어버린 자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 땅의 통치권을 부여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Pastor. Peter Yoon

'권별 강해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생자(요1:15-18)  (1) 2009.01.19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  (0) 2009.01.19
2강.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1:1-5)  (0) 2009.01.18
요한복음 개론, 말씀: 요 1:1  (0) 2009.01.18
신약교회의 세 사람  (0) 2006.11.13